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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텍 박사과정 일기 12: 모든 시작은 반드시 끝이 있으니.

논문 결론 부분을 몇 페이지 남긴 채, 빨리 끝내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계속 딴짓을 하면서 회피를 하는 중이다. 무의미하게 유튜브 영상을 멍하니 보고 있자니 차라리 일기라도 쓰자 해서 정말 오랜만에 블로그에 접속을 해본다.  5월에 박사수료를 하고 2달간 미국에 있다가 7월에 아주 한국으로 돌아왔다. 난 수업도 다 들었고 마지막 디펜스만 남겨놓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더이상 미국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었다. 빨리 한국에 들어가서 남편과 같이 살 집을 알아보고 한국에서 빨리 자리를 잡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서둘러 한국에 돌아왔다.  한국에 와서 2주마다 지도교수와 미팅을 하고 수십번의 피드백과 수백번의 뒤집어 엎기.. 몸도 마음도 지쳐갔지만 그래도 외롭게 미국에서 논문을 쓰는 것보다 이렇게 가족들 곁에서 안정적으로 논문을 쓰는게 백만번 더 나은 선택이었다고 자신할 수 있다. 이제 거의 막바지에 들어서서 디펜스 날짜만 잡으면 되는데..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있었으니. 학교 의료보험센터에서 내가 보험가입을 안했다는 이유로 내 학교계정을 정지시켜버려 디팬스 스케쥴을 잡을 수가 없는 상황이 되버린 것. 내가 미국에 없다는 것만 증명하면 된다는데 그거는 자기네들이 확인을 못하는 부분인건지? 답답한 행정시스템에 열이 받고 담당자는 전화할때마다 오피스에 없고 병가를 냈다고 하고 스트레스.. 이번 주 내로 내 계정이 풀려서 빨리 날짜를 잡을텐데 걱정이다. 아무튼.. 끝이 도저히 안 날것 같았던 나의 대학원 생활도 진짜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것. 다음 달이 되면 모든게 홀가분해 진 마음으로 연말을 만끽하고 싶다.

버지니아텍 박사과정 일기11: 외로움과 친해지는 법

미국대학은 주로 학기가 5월 중순에 끝나고 8월 말에 새학기가 시작된다. 한국이 새학기가 3월에 시작되고 12월에 끝나는 것과는 매우 다른 시스템. 박사자격시험을 끝마치고 학교일도 끝나고, 드디어 지루한 방학이 시작되었다. 캠퍼스타운은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사람이 절반 이상으로 줄어드는 느낌이다. 시험이 끝나자마자 논문쓰기에 다시 박차를 가하리라는 나의 다짐은 하루에 반 장이라도 쓰는 것을 목표로 아주 소박해졌다. 다음학기는 한국에서 마무리지을 계획이라 사실 방학이 되자마자 한국에 돌아가도 됐으나 지도교수의 피드백을 미국에 있을 때 최대한 받고 싶기도 하고 남편이 휴가를 7월이나 되야 쓸 수 있어서 난 7월 중순까지 여기에 머무르기로 했다. 룸메이트는 박사를 졸업하고 위스콘신으로 포닥을 하러 6월 1일에 이사를 간다. 3마리의 고양이와 한 마리 강아지의 주인이이었던 룸메이트가 이사를 가면 집이 텅 비어버리겠지. 그리스 룸메이트가 있긴 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 집에 들어올까 말까해서.. 그 큰 집에 나 혼자 한 달정도를 살아야 한다.  난 블랙스버그의 여름이 너무나도 싫었다. 코로나 첫 해였던 2020년. 방학 때 블랙스버그에 있으면서 우울증과 공황장애 문턱까지 갔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루함을 참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사람소리보다 새소리, 바람소리가 더 많이 나는 이곳의 지루함을 나는 정말이지 견딜 수가 없었다. 한달 뿐이지만 나는 조금의 지루함과 외로움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이것저것 계획을 세웠다.  우선, 어제 헬스장을 등록했다. 남편과 처음 살기 시작한 아파트 앞에 있는 큰 헬스장인데 헬스 뿐만 아니라 그룹레슨도 한다. 오늘은 필라테스를 등록해서 수업을 들어가봤는데 중년 여성분들만 있어서 만만하게 봤다가 복근 터질뻔... 혼자 달리는 조깅도 좋지만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무언가가 채워지는 기분이 든다. 간간히 회원들이랑 스몰톡도 하고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조바심을 내지 않기로 했다. 내 지도교수는 방학이 되자마자 내 이

버지니아텍 박사과정 일기 10: 드디어 phD candidate 가 되다.

 이번 주 월요일, 드디어 Prospectus exam을 통과했다. 약 두시간에 걸쳐 zoom으로 본 시험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무난히 잘 마무리가 되었다. 내 스스로도 내 논문에 자신이 없었는데 심사위원들과 지도교수가 적극적으로 피드백과 조언을 줘서 논문의 방향성을 더 확실하게 잡고 갈 수 있을 것 같다. 발표 후 Q&A를 한 30분 넘게 하고 난 후, 난 잠시 미팅룸에서 나가 지도교수와 심사위원들이 회의를 한다. 내가 다시 미팅룸에 돌아오니 축하한다는 인사와 함께 밝은 웃음으로 이제 한 단계만 더 남았으니 힘내라고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으셨다.  2018년 1월의 나를 떠올려본다. 남편의 미국 유학으로 어떨결에 나도 미국 유학을 꿈꾸게 되었고 정말 운이 좋게 석사과정을 붙어서 이곳으로 왔다. 그 당시 나는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보통 대학원은 펀딩을 받으면서 입학하기 때문에 학비도 면제에다가 월급도 받는데 나는 내가 붙은 학과에 펀딩이 없어서 등록금을 내야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냥 돈만 주면 다 붙여주는데 아닌가' 싶은 생각도 없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서 듣는 강의에 익숙했던 난 매주 발표, 토론 수업에 스트레스를 받아 헤르페스도 걸리고 정수리에 탈모가 와서 손톱만한 구멍이 머리에 뚫리기도 했었다. 꾸역꾸역 학업을 이어나가고 있었지만 늘 마음 한켠엔 불안감이 가득했었다. 하지만 그 해 학교에서 한국어 강사를 모집한다는 메일을 받고 지원을 해서 내가 최종으로 합격이 되었고 2019년에 지금 학과 박사과정에 3년 펀딩을 약속받고 입학을 하게 되었다. 강사로 일을 하면서 박사과정도 들어오니 나의 불안감과 낮은 자신감을 점점 회복할 수 있었다.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코로나가 시작됐던 2020년. 그 해 여름, 나는 극심한 우울감에 시달려야했다. 병원에서 진단을 받아서 확신하지 못하지만 공황장애 비슷한 것도 찾아왔었다. 해가 뜰때 까지도 잠에 들지 못했고 심장이 제멋대로 빨리 뛰기도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