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주 금요일 새벽, 로아노크 공항에 내렸다. 날씨는 한국보다 따뜻했고 비가 내리고 있었다. 호텔에 맡겨놓았던 차를 타고 블랙스버그로 가면서도 나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집에 와서 짐을 풀렀을 때도, 그 다음날 차를 타고 캠퍼스를 한바퀴 돌았을 때도 나는 그저 담담히 내 눈에 들어오는 낯선 풍경들을 눈에 담을 뿐이었다. 서울과는 너무나도 다른, 평온함을 넘어 적막하기 까지 한 블랙스버그의 풍경들을 보며 나는 내가 살아온 짧지도 길지도 않은 나의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어렸을 때부터 무던한 성격이었던 나. 등하교길에 피어있는 꽃들과 흙바닥을 열심히 기어다니는 개미따위를 보느라 항상 지각을 하거나 집에 늦게 들어갔던 나의 초등학생 시절이 별안간 떠올랐다. 난 특별히 공부에 욕심을 부렸던 적이 없었고 공부에 재능이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서른이 된 지금 나는 다시 공부를 하러 이 곳으로 오게 되니 뭔가 몸에 안맞는 옷을 입고 있는 기분이다. 엊그제 지도교수와 미팅을 하고 첫 수업을 들었다. 생각했던 것 보다 영어가 잘 되지 않아 대화를 매끄럽게 이어나가지 못했다. 부끄럽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주눅이 들거나 두렵다는 생각을 들지 않았다. 그저 이것 또한 어떻게든 버텨내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수업을 들을 때도 난 다른 학생들보다 더 경직된 상태였다. 이렇게 긴장하고 있는 나를 보고 있자니 예전 대학원 때 같이 수업을 들었던 외국인 대학원생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들도 나와 같은 심정이었겠지. 아무튼 이제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다. 조금씩 나아지기만 하면 된다. 천천히 이루어나가자.